일당스님(1922~2014)

[김천=황악신문] 김서업 기자=일당(日堂) 김태신(金泰伸) 스님은 한국 불교와 예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불교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승(畵僧)으로, 192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예술과 종교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와 깊이 있는 선(禪) 사상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일본에서 유명한 아사히 미술상등을 수상한 그는 그림을 통해 불교적 메시지를 전하려 했고, 93세까지 그림과 수행의 길을 이어갔다.

그의 인생은 화가로서의 성공,수행자로서의 고독, 어머니와의 복잡한 인연이 얽혀 있으며, 그가 남긴 작품은 불교와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깊은 울림을 주고있다.

김일엽 스님(본명 김원주 1896~1971)

김태신 스님의 어머니로 알려진 김일엽(본명 김원주, 1896~1971)스님은 일제강점기 유학파 문인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창간하며 여성 해방을 외친 선구적 인물이었다. 그녀는 후에 출가하여 일엽(一葉) 스님으로 불리며 비구니로서 활동했으며, 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일엽 스님은 ‘신여성’으로서 여성의 자립과 자아 찾기를 주창했고,일본 유학중 일본의 유력가문인 오타 세이조와의 사랑으로 인해 김태신 스님이 태어났다.

그러나 최근 일엽 스님의 시봉을 맡았던 월송 스님은 회고록에서 “김태신 스님이 일엽 스님의 아들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월송 스님은 김태신 스님이 일엽 스님과 오다 세이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자신을 아들이라고 주장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태신 스님은 어머니 일엽 스님과의 인연을 평생 그리워했고, 불가에서의 삶을 통해 그리움과 애증을 예술로 승화했다.

김태신 스님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양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동양화를 배웠고,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미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며 아사히 미술상 등 일본 최고의 3대 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을 거뒀고, 1972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66세의 나이에 직지사에서 관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그는 화려한 색감과 깊이 있는 불화 및 인물화를 통해 불교적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경험한 고독과 아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화에 담아내며 내면의 평화를 구했다. 그의 작품에는 세속의 번잡함을 벗어난 고요함과 경건함이 배어 있으며, 이는 수많은 불교 신자와 예술 애호가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선사했다.

김태신 스님은 한국불교미륵종 제5세 종정을 역임하며 종단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의 주요 사찰과 산수를 화폭에 담으면서 불교와 예술을 융합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불교적 사유와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조선시대 중기까지 동양화의 주종을 이루던 북종화의 맥과,벽화시대부터 이어온 화사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이 특징인 석채화(石彩畵)의 맥을 이었다고 적었다.

일당스님이 그린 반가사유상

김태신 스님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평생 갈등과 그리움을 느꼈다. 자서전에서 그는 14세가 되어서야 어머니 일엽 스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수덕사를 찾아갔으나 일엽스님은 아들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마라"며 엄격하게 대했다. 이후 방학마다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일엽 스님은 매서운 태도로 아들을 대하며 숙박조차 절에서 하지 못하게 했다. 김태신 스님은 “나는 어머니에게 라훌라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하며, 어머니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수행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음에도,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그가 평생 그림을 통해 표현해온 주제였다. 그는 한국의 산을 화폭에 담았고, 산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특히 수덕사에서 일엽 스님의 절친인 화가 나혜석과의 만남은 김태신 스님의 예술적 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당스님의 산수화

일당 스님의 작품은 2014년 그가 입적한 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유작 일부가 제자에 의해 유족 동의 없이 처분되면서 법적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북부지검은 김태신 스님의 제자 고모 씨가 작품 15점 이상을 유족 동의 없이 판매한 횡령 혐의로 기소했고, 제자는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고모 씨가 박물관 설립을 위한 목적으로 그림을 처분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일당 스님의 작품

김태신 스님이 남긴 작품은 불교적 사유와 감정을 담아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불화와 인물화는 단순한 미술성을 넘어, 자신의 생애를 불교적 가르침과 예술로 표현하려 했던 스님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스님은 불교와 예술의 융합을 꾀하며 삶과 수행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고요함과 평화는마음의 안식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그가 남긴 예술적 가르침은 불교와 예술계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일당스님의 산수화

김태신 스님의 생애는 기구한 가족사와 그 속에서 겪은 고독, 예술과 수행으로 이룬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그는 그림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그가 전한 불교적 메시지는 그림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지역에도 일당 스님의 작품을 가진 시민들이 있다. 기회가 되면 전시회를 열어 한국과 일본의 변방인으로 살면서 양국을그림으로 잇고, 일본의 3대 미술상을 받은 화가의 수준 높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일당 스님의 일생은 한.일간 시대사를 관통하는 아픔과 근대사의 역사를 담고 있다. 자서전에는 근대 불교사와 독립운동에 대한 祕史도 흥미롭다.김천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 일당 스님의 일생은 더 연구가 필요하고, 그의 작품은 잘 보존되어야 할 지역의 문화.예술 자산이다. 일본과 지역을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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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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